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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을 켜세요
by groscalin at 11/20 어려운데.......? by 깜장여우 at 11/16 어렵네요 @.@ by 자성구자 at 07/23 시험기간에 뻘짓하는게 .. by 자성구자 at 07/22 찾았음. 회사앞 밥집. .. by groscalin at 07/20 그래서 주말에 전화를 못.. by 깜장여우 at 07/20 http://ffffound.com/ by groscalin at 07/19 물론입니다. ^^ by groscalin at 07/18 동영상보고 났더니, 오.. by 자성구자 at 07/10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 by Barrier at 07/10 라이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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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트게임 'Killer7'의 제작자 Suda51(스다 고이치)씨가 호주 GO3 컨퍼런스에서 그의 지난날과, 게임에 있어서의 감성, 그리고 현재 개발중인 Grasshopper Manufacture의 새로운 Wii 타이틀 'No More Heroes'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청중에게 자신을 소개한 후 그는 자신의 닉네임인 Suda51을 일본어 발음 5(고)와 1(이치)에서 따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휴먼'사에 입사해서 '불꽃 프로레슬링'이라는 게임을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 레슬링 게임이 성공하고 그는 'Twilight Syndrome'과 'Moonlight Syndrome'라는 호러게임의 디렉터를 연달아 맡았다. 'Moonlight Syndrome'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는 결말로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단단한 고정팬을 만들었다고 한다" Grasshopper Manufacture의 설립(Forming Grasshopper Manufacture) 1998년 그는 휴먼을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다. 그것이 "Grasshopper Manufacture", 그 회사는 "비디오 게임 밴드"라는 철학으로 단 네명의 동료로 시작했다. 스크립트 제작파트 / 프로그래밍 파트 / 그래픽 파트 / 사운드 파트, 이건 마치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 모여 그럴싸한 소리를 만드는 것처럼 게임을 만들어 간다는 철학이다. '메뚜기 제작소'라고 하는 이름은 스다와 그의 동료들이 잘 짜여진 게임 제작 공장 - 모든 개발과정을 회사내에서 소화하는 조직이라는 의도로 지어졌고 모든 개발은 다음 세가지 슬로건 하에 진행 되었다. : 'call and response', 'crash and build', 'let's punk' 다음으로 그는 Grasshopper의 첫번째 PS1 텍스트 어드벤쳐게임인 'The Silver Case'를 보여주며, 그당시 Grasshopper는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시달려 단지 세명의 개발자 뿐이었다. "우리는 많은 인력을 들일수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을 들였습니다." 이 상황은 스다에게 게임디자인을 다른관점에서 생각하게 만들었고, 'film window engine'이라고하는 - 제한된 윈도우에 게임화면을 그려넣는 - 방법을 채용했다고 한다. "이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는 계속해 나갈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The Silver Case'는 그럭저럭 성공했다. 발매된지 이미 9년이나 지났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후속작에 대한 요청에 못이겨 금번 NDS로 리메이크 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문으로도 게임을 즐길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On Making Killer7 그의 첫번째 PS2게임인 'Flower, Sun and Rain'에 대한 간략한 소개후에, 그의 첫번째 북미 발매작이자 그를 유명하게 만든 'Killer7'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Killer7'과 'The Silver Case'는 많은 점에서 닮아있다고 했다. : "제 생각에 '실버사건'은 스토리나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 부분에서 많은 실험을 한 작품입니다. 저는 '실버사건'을 가능한 유연하게 만들려고 했고, 'Killer7'은 '실버사건 만큼이나 유연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해외버전을 만들것을 염두에 둔 'Killer7'이었기 때문에 그는 '실버사건'과 같은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보다 재정적으로 많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본다는 철학, 특히 게임 컨트롤의 재정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기존 게임들의 통념을 깨트렸습니다. A버튼은 공격, B는 점프,, 같은 것들을 버리고 모든걸 새로 만들었죠", 스틱으로 하던 이동을 A버튼으로 옮기고, 기존의 버튼들은 새로운 액션을 선택하거나, 이동방향을 정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저는 'Killer7'이 과거의 게임들과는 다른 경험을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북미와 유럽의 기존 컨트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만들고 싶었고, 발매 초기에는 컨트롤이 너무 어렵다는 불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실험을 했고, 그게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간에,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또 새로운 게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Killer7의 또다른 특이점은 독특한 비주얼이다, 스다가 집어넣은 다양한 멀티미디어 요소, 사진과 셀셰이딩을 게임에 과감히 사용했다. "게임 디렉터는 셀애니메이션이 게임에서 사용될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고, 그점이 제가 셀애니메이션을 사용한 이유입니다." 스다는 게임과 다른 매체들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고 한다. 다른 매체들과 경쟁함으로써 매체자신의 정통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Killer7이 단지 다른 게임들과만 경쟁하지 않고, 음악이나 동시대의 다른 예술가들과 경쟁하기를 원하며, 충분히 세계무대에서 경쟁할수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는 게임이 다른 문화산업처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느끼며, 영화가 걸었던 길을 걸어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저는 사람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Killer7을 만든 철학이 바로 그런것 입니다. 성공했든 그렇지 못했든, 많은 팬들이 Killer7을 즐겁게 만끽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Call And Response" Game Design 다음으로 스다씨는 그가 게임을 만들며 겪었던 경험을 그네 회사의 슬로건인 "Call and Response"라고 소개했다. 게임제작이라고 하는 분야는 전통적으로 Developer와 Publisher의 계약거래로서 설명되지만 그는 이 개념 보다는 디렉터와 프로듀서의 좀 더 개인적인 협동이라고 말한다. 게임이 엔터테이먼트 임은 동의 하지만 단순히 마켓이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조금 더 나아가서, "우리는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해서 감사하게 하는것에 중점을 둡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은 게임상의 재미라는 요소와 새로운 지적 도전간의 긴장을 통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중의 요구에도 부합하면서도 게임성이 있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프로듀서의 의견에 귀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믿는것은 제작자의 의견입니다. 모든이의 의견을 다 들을수는 없기 때문에 제작자가 우리가 찾는 소비자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일이 "프로듀서의 요구에 가장 알맞는 대답을 주는것"이며, 처음 작업을 시작할때는 프로듀서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서, 사용자에게 어필하면서도 새로운 게임이 될때까지 개발한다고 한다. 여기서 이 회사의 두번째 슬로건인 "crash and build"가 나오게 된다. "자기자신의 아이디어를 깰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디렉터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도출된 프로토타입에 호소력이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만듭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좋은 게임이 만들어 집니다." It's All About Punk Games 새롭고도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한 이 모든 노력들은 그의 마지막 슬로건 : "Let's Punk"로 이어진다. "펑크라고 하면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것을 창조하는 뜻입니다. 펑크 게임을 만든다 라는 것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Killer7을 만들기 이전에는 제 머릿속을 제외하고는 어떤 실체도 없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게임은 어디에도 비교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작자들에게 동기부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스탭들에 디렉터가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를, 기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쉬울 것을 왜 굳이 전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것을 만든다는 것의 가치를 말이지요, 이것이 저의 첫번째 싸움입니다." 그의 두번째 싸움은 시장이다. 그렇다고 다른게임들과의 싸움이 아니라고 한다. "게임산업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게임개발자들은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그의 경쟁은 다른 예술로 향한다. "동시대의 음악, 영화, 프린트 아티스트들, 현재 가장 독창적인 창작을 하는 이들과 경쟁합니다." 마지막 싸움은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 진다고 한다. "전에 말했듯이, 저는 존재하지 않는 해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제 영감을 독창성에 쏟아 붓는것이 가장 어려운 싸움입니다." Getting Emotional Over Games "게임에 있어서 감성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감정이 없는 게임은 지루할 뿐입니다." 그는 영화의 팬이지만 몰입이 주는 감정적 효과는 영화보다 게임이 더 크다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 그의 친구와 밤새도록 패미컴 게임을 했던날을 이야기 하며, 어느날 아침 그의 친구가 게임의 슬픈 엔딩을 보며 울고 있는것을 보고 게임의 감성적 능력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로 게임 디자이너를 꿈꿔왔지만, 그러한 게임을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자신은 아직 그런 게임을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스다씨는 레슬링에 대한 열정으로 휴먼사에 입사했지만, 그는 스스로 운이 좋으며 게임업계에 빚이 졌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게임을 만들어서 제 빚을 갚는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본적없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새로운 게임이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이것은 다음 세대에게 좋지 않습니다. 이곳에 학생들도 많이 온것 같지만, 새로운 세대를 위한 디딤돌을 만들어 주는것이 디렉터로서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출시될 Wii용 "No More Heroes"의 시연에 앞서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만일 게임이 없었다면 매우 슬플것입니다. 그런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게임이라는 문화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게임을, 펑크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실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원문 Gamasutra.com 'Industr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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